독락(獨樂) 예찬/朴 水 鎭(시인)
독락(獨樂) 예찬
朴 水 鎭(시인)
독락은 말 그대로 혼자 있음의 즐거움이다. 혼자 있으면 일반적으로 외로움이나 우울이라는 감정과 짝을 이룰 법한데 홀로와 함께 즐거움이라니. 언뜻 들으면 모순 어법의 말 같기도 해서 더욱 멋이 있는 말이다. 인간은 본시 혼자서 왔다가 혼자서 가야하는 외로운 존재이지만 서로 어울려 사는 동안은 존재의 실상을 잊고 살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는 순간 문득 홀로가 될 때 우리는 ‘외로움은 인간의 풍토이다’라는 카잔차키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홀로가 되고 외로움과 벗을 삼는데 미숙하여 우울증이라는 병중의 늪에 빠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혼자 노는데 익숙한 사람이 있다. 그들은 바로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이다. 그들에게는 외로움을 벗하는 일이 일상이기에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을 잘 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한 편의 시를 처방해 세상에 풀어 놓았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호승의 <수선화> 전편
그렇다,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아프니까 살아있는 것이다. 누군들 외롭지 않고 아프지 않고 갈 수 있겠는가. 지금 비록 혼자가 아니라고 위안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혼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더구나 100세 장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혼자의 즐거움, ‘독락’을 누리는 방법을 몇 가지는 알고 몸에 익혀두어야 늘그막에 가서 나도 편하고 가족과 주위 사람도 편하게 하는 길이 된다. 연금으로 노후 생활을 준비하고, 운동으로 육체의 노화를 지연하는 것만큼이나 혼자서 잘 놀고 혼자서 즐기는 일거리를 마련하는 일은 한 순간도 미룰 일이 아니다.
그러면 독락의 구체적인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취미나 환경에 따라 여러 길이 있겠지만 내가 실천하는 몇 가지 경제적인 방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먼저 글읽기이다. 아침마다 신문을 기다리는 재미를 느껴보라. 오늘은 어떤 기사, 어떤 좋은 글을 만날까를 기대하며 신문을 맞으면 그것은 두근거림으로 하루를 맞이하는 혼자만의 좋은 놀이거리가 된다. 거기다 더해 가끔씩 서점을 들러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그 자체가 삶의 활력이 된다.
다음으로 화초 가꾸기이다. 텃밭이면 더 좋겠다. 무엇인가 생명을 가꾸는 일만큼 재미있고 보람있는 혼자의 놀이가 또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일거리이다.
한철을 잘 보낸 베란다 화분들
하나 둘 들어내 인사조치 한다
꽃을 피운 놈들은 뒷자리로
꽃망울 매단 놈은 앞자리로
너무 웃자란 가지 싹둑 잘라주고
시든 잎은 따내며 방향도 틀어준다
안에 것 밖으로 밖에 것 안으로 들여
새 자리 잡아 앉혀 주는 인사이동 하는 날
입 무거운 놈들 누구 하나 불평하는 법 없다.
더러는 아프고 불편해도
제 살리는 일인 줄 아는 까닭에
함께 사는 길인 줄 아는 까닭에 - 박수진 시 <화초들의 인사이동> 전편 -
또 한 가지는 홀로 산행이다. 함께도 좋지만 혼자서 등산이나 둘레길 걷기를 습관으로 길들이면 참으로 멋진 지구별 여행자가 될 것이다. ‘ 내려올 때 보았네 / 올라 갈 때 못 본 / 그 꽃’이란 시처럼 관찰과 통찰의 부산물까지 건진다면 금상첨화다.
여기서는 黙言이란 말이 따로 필요 없네
사방을 둘러보아도 / 모두가 입 없는 것들의 세상
말에 지친 인간사 싫어 / 오래 전 이미 말을 잊은 채
욕망도 憎愛도 넘어선 지 오래
나무와 바위와 바람과 구름
그들과 오래 마주하고 서 보면
내 안에 펄럭이던 狂氣의 깃발
순하게 길들여 사붓이 내려지고
수다한 마음도 굳게 입을 닫네. - 박수진 시 <빈산에 홀로> 전편 -
그밖에 서예나 그림그리기를 권하고 싶다. 첫걸음은 좀 어려울지 모르지만 묵향에 젖어 향기로운 글을 한지에 한 자 두 자 써 보는 일은 최고의 호사임에 틀림없다. 시나 수필 쓰기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글쓰기는 최고의 도전이고 인생을 두 번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음악 감상과 명상 또한 독락의 앞 순서로 권하는 종목이다.
마음이 편하고 부담이 가지 않는다면 여럿이 어울리는 기회는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그 일이 여의치 않을 경우 ‘바람 불면 바람처럼 비가 오면 비처럼 천둥치면 천둥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하여 오늘은 ‘독락’ 두 글자를 힘주어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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