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그대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한 사문이 붓다에게 물었다.
무엇이 가장 강한 것이고 무엇이 가장 밝은 것입니까.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온유함이 가장 강한 것이니
악한 생각을 품지 않으므로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건강하다.
온유한 사람은 악한 마음이 없으므로
반드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가장 밝은 것은
티끌이 완전히 정화되어
순수함이 변함없고 흠 없이 지속되는 마음이다.
그러한 마음은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부터 오늘까지
시방에 잇는 모든 것을
보지 못함이 없고 듣지 못함이 없으며
일체지를 얻었기 때문에
가장 밝은 것이라 한다.


沙門問佛 何者多力 何者最明 
佛言 忍辱多力 不懷惡故 兼加安健 忍者無惡 必爲人尊 心垢滅盡 淨無瑕穢* 是爲最明
末有天地 逮于今日 十方所有 無有不見 無有不知 無有不聞 得一切智 可謂明矣

                                                      *더러울예

삶을 사는데는 두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군인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산야신의 길이다. 
그대는 삶과 투쟁할 수도 잇고 삶 속에 휴식할 수도 있다. 
삶을 정복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고 깊은 내맡김 속에 살 수도 있다.
군인의 길은 잘못된 길이다. 삶을 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분은 전체를 정복할 수 없다. 삶은 아무도 파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가 삶과 싸운다면 
바로 그대 자신의 폭력성에 의해서 그대는 파괴될 것이다.
군인의 길은 일반적인 길이다. 99.9%의 사람들이 그 길로 간다. 
그러므로 그토록 많은 불행과 지옥이 있다.

이것은 잘못 되었다. 
한번 이것을 이해하게 되면 그대는 전체와 조율되어 전체와 춤추기 시작한다. 
그대는 싸움을 버리고 협력하기 시작한다. 
삶에 협력하는 것을 결심하는 순간 그대는 산야신이 된다. 
열쇠는 투쟁이 아니라 협력이다. 
의심이 열쇠가 아니라 신뢰가 열쇠다. 
폭력은 길이 아니다. 
사랑이 길이다.

무엇이 강한 것인가? 우리는 언제나 파워게임 속에 있다.
강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은 
자신이 무력하다고 나약하다고 자신이 한계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수만가지의 한계가 그대를 에워싸고있다.
도처에서 그대는 벽에 부딪치고 무력함을 느낀다. 
그대는 삶의 매 순간마다 무력감 속에 산다. 
그 때 이 질문이 나온다. 
무엇이 강하는 것인가?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힘을 성취하는데 하나의 장애물이다. 
강해지려고 노력하면 강해질 수 없다. 
추구함으로서 그들은 스스로 파괴된다. 
이 힘에 대한 욕구는 수많은 것을 세상에 창조해 냈다. 
힘에 대한 욕구는 과학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 힘은 자연을 파괴하고 삶의 자연스런 흐름을 교란하여 버렸다.

예수가 말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잇나니.."
세상에서 맨 마지막의 사람이 내 왕국에서는 첫째가 될 것이다.

노자는 말했다. "나는 이미 졌으므로 아무도 나를 이길 수 없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으로 존재하므로 아무도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대는 나를 더 이상 뒤로 떠밀지 못한다. 내가 맨 나중의 삶이기 때문이다.

붓다가 말했다. 온유함이 가장 강하다. 온유한 사람은 정복할 것이 없다. 
어떻게 그를 패배시킬 수 있겠는가. 온유한 사람은 성공하려 않는다. 
그를 실패케할 수 없다. 
온유한 사람은 부에 대한 욕망이 없으므로 그를 가난하게 할 수 없다. 
가난이 그의 부유함이다. 
특별한 사람이 되지 않는것이 그의 삶의 방식이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그에게서 무엇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그는 자아가 없다. 그 자신의 에고가 없다.


가장 밝은 것. 티끌이 완전히 정리된 상태... 사념은 거울에 달라붙은 티끌이다. 
사념 욕망, 상상, 기억들, 이것들이 티끌의 모습이다.

어느날 모든 커텐을 벗겨 버리면 그대는 문득 그대가 그대 자신의 등불임을 본다.

그대는 빛이다.

온유함은 힘이고 명상은 광명이다.